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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모든 음료의 바탕이며 요리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재료입니다. 특히 바리스타·셰프·티 소믈리에·음료 개발자에게는 물의 경도해석과 TDS수치, 그리고 pH균형이 곧 풍미의 예측력과 직결됩니다. 이 글은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경도(칼슘·마그네슘 기여치)와 총 용존고형물(TDS)의 상관, 그리고 pH가 향미·질감·추출 효율에 미치는 실제적 영향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정리합니다. 더불어 라벨 정보가 빈약한 병입수나 수돗물을 사용할 때도 간단한 측정과 보정 절차만으로 일관된 결과를 확보하는 방법을 단계별로 안내합니다. 최종 목표는 복잡한 이론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매장 규모와 예산, 메뉴 포트폴리오에 맞게 ‘측정→판단→보정→검증’의 루틴을 구축하여 누구나 재현 가능한 물맛 관리 체계를 갖추는 것입니다.
물소믈리에 경도해석
물소믈리에의 경도해석은 단순히 수치 표기를 읽는 수준을 넘어, 칼슘(Ca²⁺)과 마그네슘(Mg²⁺)이 각각 미치는 감각적 결과를 예측하는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칼슘 우세의 중경수는 우유·크림류와 결합할 때 바디를 보강하지만, 마그네슘 비중이 높아지면 산미의 윤곽이 뚜렷해지며 짭짤한 끝맛이 미세하게 부각됩니다. 동일한 총경도라도 Ca:Mg 비율에 따라 커피 추출의 용해 양상, 찻잎의 떫은맛 해리 정도, 소금·설탕의 체감 강도가 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실무에서는 라벨의 ‘경도 단위(㎎/L as CaCO₃ 또는 dH)’가 제각각이므로, 우선 자신이 사용하는 단위를 고정하고 다른 표기를 간단히 환산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예컨대 °dH를 ㎎/L로 전환하려면 대략 ×17.8을 적용하면 빠르게 근사치를 얻을 수 있고, 반대로 ㎎/L 값을 °dH로 가볍게 확인하려면 ÷17.8을 사용합니다. 경도해석의 실천은 ‘메뉴 맵’과 연결될 때 더욱 빛을 발합니다. 밝은 로스팅의 산미 중심 커피, 고산지 향이 또렷한 우롱차, 시트러스 베이스 모크테일 등은 상대적으로 마그네슘 영향이 도드라지는 물에서 향의 윤곽이 분명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로 다크 로스트 에스프레소, 밀크 베이스 라떼, 카카오 버터 함량 높은 핫초콜릿 같은 메뉴는 칼슘 기여가 강한 물에서 텍스처가 안정적으로 느껴집니다. 중요한 것은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매장의 대표 메뉴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경도 특성을 매칭하는 일관성입니다. 초기에는 두 가지 대비 프로파일(예: Ca 우세형·Mg 우세형)을 준비하여 시음하고, 판매 비중이 높은 메뉴에 더 설득력 있는 물을 기본값으로 채택합니다. 현장에서는 라임스케일(보일러 스케일링), 유리잔의 무광 침착, 머신 내부 열교환 효율 저하 같은 위생·설비 이슈도 경도와 직결됩니다. 경도가 높은 지역수는 맛의 장점과 별개로 스케일 관리 빈도가 증가하므로, 필터 카트리지의 용량·교체 주기, 역세척 일정 등을 경도 데이터에 맞추어 사전에 계획해야 예기치 않은 다운타임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경도해석은 맛의 미세 조정과 설비 유지보수의 균형점에서 다뤄져야 하며, 물소믈리에는 감각 평가와 운영 현실을 잇는 번역가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TDS수치 해석과 활용
TDS(Total Dissolved Solids)는 물에 용해된 무기물·유기물 총량을 뜻하며, 추출 효율과 체감 바디에 직접적인 힌트를 제공합니다. 동일한 원두·찻잎·재료를 쓰더라도 TDS가 높을수록 용질의 이동이 활발해져 추출이 빠르게 진행되고, 과다 추출 위험이 커지는 반면, 지나치게 낮으면 풍미가 허전하고 얇은 질감으로 인식되기 쉽습니다. 실무에서 중요한 점은 ‘절댓값’보다 ‘루틴’입니다. 즉, 측정→레시피 조정→관능 검증을 반복하여 매장 고유의 최적 범위를 확립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핸드드립 커피를 운영하는 매장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기저 TDS가 90ppm인 연수 환경에서 산미 중심 싱글오리진을 추출할 때는 분쇄도를 한 단계 곱게, 물 온도를 1~2℃ 높여 부족한 용해력을 보완합니다. 반대로 180ppm 근방의 중경수 환경에서는 분쇄도를 미세하게 굵게 하거나 추출 온도를 1~2℃ 낮추어 과다 용출을 방지합니다. 차(茶) 영역에서도 원리는 동일합니다. 우롱차·녹차의 폴리페놀류는 TDS가 낮을 때 선명한 향이 드러나지만, 특정 임계값을 넘으면 떫은맛이 급격히 부각되므로 추출 시간·수온·잎량을 함께 조절해야 합니다. 모크테일·에이드류에서는 시럽·산미료·탄산수와의 상호작용이 변수가 됩니다. TDS가 높은 물은 당의 점착감을 강조하여 ‘무게감’을 주는 반면, 낮은 물은 상큼하고 가벼운 인상을 줍니다. 따라서 매장 콘셉트가 ‘가벼운 청량’이라면 기본 제조수로 낮은 TDS의 정수/병입수를 쓰고, ‘디저트형 풍성함’을 노린다면 미네랄이 조금 더 살아있는 물을 선택하는 식으로 방향을 정합니다. 장비·예산의 제약을 고려한 현실 팁도 중요합니다. 가장 간편한 방법은 휴대용 TDS 미터를 사용해 매일 개점 전 제조수와 얼음 용수의 수치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얼음은 녹으면서 음료의 체감 TDS를 낮추므로, 얼음 제작용 물의 TDS를 따로 관리하지 않으면 레시피 재현성이 떨어집니다. 또한 병입수는 배치마다 변동이 발생할 수 있으니, 입고 시 첫 병으로 TDS를 확인하고 라벨의 로트 번호를 메모해두면 맛 변화의 원인을 추적하기 수월합니다. 마지막으로, 수치에만 매달리는 오류를 경계해야 합니다. TDS는 ‘총량’ 지표일 뿐 성분의 종류나 비율을 말해주지 않으므로, 경도·pH 같은 보조 지표와 관능 평가를 반드시 병행해야 합니다.
pH균형 현장 적용
pH는 맛의 윤곽선과 위생·설비 안정성 두 축을 동시에 건드립니다. 커피·차·모크테일 어디서든 너무 낮은 pH(강한 산성)는 산미가 날카롭게 튀고 금속성 이취가 부각될 수 있으며, 너무 높은 pH(알칼리성)는 단맛·향이 퍼지며 밋밋한 인상을 남깁니다. 현장에서는 ‘메뉴 의도에 맞는 구간’을 정해두고 벗어났을 때의 보정 절차를 미리 문서화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예를 들어 시트러스 베이스 모크테일을 주력으로 하는 매장은 pH 3.2~3.8 범위를 목표로 삼고, 측정값이 3.0 이하로 내려가면 베이스 원액의 산 함량을 낮추거나 희석비를 조정합니다. 반대로 라테·코코아처럼 유제품과 결합하는 메뉴는 과도한 산성 환경에서 응고·분리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제조수·얼음·소스의 pH를 종합적으로 살피고 필요시 완충(버퍼) 역할을 하는 미네랄 프로파일로 전환합니다. pH 보정은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① 시험지 또는 휴대용 pH 미터로 제조 전후를 측정하고, ② 레시피의 산·당·수 비율을 1% 단위로 미세 조정하며, ③ 바텐더·바리스타 2인 이상의 블라인드 시음으로 관능 검증을 거치는 3스텝이면 충분합니다. 얼음의 pH가 음료의 최종 pH를 천천히 끌어올리거나 낮추는 경우가 많으니, 얼음 전용 용수의 pH도 주간 단위로 기록하면 재현성이 크게 향상됩니다. 더 나아가 위생 관점에서 pH는 머신의 세정 루틴과도 맞물립니다. 산성 세정제 사용 후 충분한 린스를 거치지 않으면 잔류 산이 다음 추출의 pH를 교란할 수 있으므로, ‘세정→중화 린스→더미 추출’의 체크리스트를 운영 매뉴얼에 포함시키는 편이 안전합니다. 마지막으로, 팀 차원의 루틴화를 권합니다. 오픈 직전 15분을 ‘워터 브리핑’으로 고정하여 경도·TDS·pH를 점검하고, 대표 메뉴 2종으로 빠른 검증을 마친 뒤 그날의 추천 물 프로파일을 바·주방 전원에게 공유합니다. 신입 교육 때는 ‘수치→감각’의 연결고리를 체득하도록, 같은 레시피를 물만 바꾸어 시음하는 훈련을 주 1회 시행하십시오. 그렇게 축적된 데이터 시트는 매장의 감각을 객관화하는 도구가 되어, 계절·원료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일관성을 만들어 줍니다. pH균형은 복잡한 학문이 아니라, 손끝의 작은 습관에서 시작되는 운영 기술입니다. 오늘부터 측정과 기록, 미세 보정의 루틴을 정착시키면, 당신의 음료는 숫자와 감각이 일치하는 ‘설득력 있는 맛’으로 완성될 것입니다.